남유럽 경제의 그림자: 고부가산업 육성 실패와 관광 함정





남유럽 경제의 그림자: 고부가산업 육성 실패와 관광 함정

남유럽 경제의 그림자: 고부가산업 육성 실패와 관광 함정

이른 아침,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활기찹니다. 지난여름,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던 아테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복 관광’의 최대 수혜지 중 하나였습니다. 아침 8시에도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었고, 플라카 거리의 카페들은 늘 만석이었습니다. 이처럼 넘쳐나는 관광객 덕분에 그리스는 한때 ‘유럽의 열등생’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그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1세기 초 유럽의 ‘문제아’로 불리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4개국, 이른바 PIGS 국가들이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이들 4개국의 국내총생산(GDP) 실질성장률은 평균 1.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유로지역 전체 평균(0.9%)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사회적 갈등과 재정적자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서유럽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보기에는 화려한 경제 회복 이면에는 고부가산업 육성 실패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관광산업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는 언제든 이들 국가를 ‘관광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낳고 있습니다.

남유럽 경제의 겉과 속: 관광 회복의 명암

남유럽 경제의 겉과 속: 관광 회복의 명암

남유럽 국가들의 최근 경제 성장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이들 국가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는 관광 수입이 국가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며 재정 건전성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페인 역시 관광 부문의 회복과 함께 노동 시장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됩니다. 2024년 11.4%였던 실업률은 2026년에는 10%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속적인 이민 유입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적극적인 재정 건전화 정책을 통해 부채 비율을 낮추고 있으며, 실업률 또한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남유럽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바로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이 더디다는 점입니다. 관광산업은 단기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지속 가능한 부를 창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관광 부문은 주로 저임금 노동력과 계절적 요인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국가 경제가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에 취약해지고, 사회 전반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관광 의존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섹션 1 이미지

  • 외부 충격에 대한 높은 취약성: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관광산업에 미친 치명적인 영향은 관광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경 봉쇄와 여행 제한은 이들 국가의 경제를 급격히 위축시켰고, 이는 곧바로 실업률 증가와 재정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 저임금 및 저숙련 노동력 의존: 관광산업은 숙련도가 비교적 낮은 서비스 직종이 많으며, 임금 수준 또한 다른 고부가산업에 비해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인적 자본 개발을 저해하고, 젊은 세대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 생산성 향상의 한계: 관광 부문은 자동화나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여지가 제한적입니다. 이는 국가 전체의 생산성 증가율을 둔화시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 계절적 변동성: 관광 성수기와 비수기의 고용 변동성이 커서 노동 시장의 안정성을 해칩니다.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노동 시장이 여전히 기간제 근무를 중심으로 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적 요인 때문입니다.

고부가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

고부가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

남유럽 국가들이 관광 의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관료주의, 복잡한 규제, 그리고 인적 자본 투자 부족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스페인의 관료주의와 규제 장벽

섹션 2 이미지

스페인은 최근 노동 시장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관료주의와 복잡한 규제가 고부가산업으로의 다각화를 저해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나 혁신적인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신속한 행정 절차와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경직된 시스템은 이러한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예를 들어, IT 분야나 첨단 제조업과 같은 고부가산업은 연구 개발 투자, 특허 출원, 그리고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지연되거나 불투명할 경우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게 됩니다. 이는 결국 스페인이 잠재적인 성장 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노동 시장 문제

섹션 3 이미지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재정 건전화와 실업률 개선이라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노동 시장은 기간제 근무가 중심입니다. 이는 주로 관광 성수기에 의존하는 계절적 요인 때문입니다. 관광업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필요로 하며, 비수기에는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노동자들이 장기적인 경력 개발이나 고부가산업에 필요한 전문 기술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줍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도 숙련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어 고부가산업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혁신 역량 강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통적인 문제: 낮은 생산성과 청년 실업

섹션 4 이미지

마르코 유키치 비스마르크 애널리시스 수석분석가는 “관광이 단기적인 번영을 가져올지 몰라도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제한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생산성이 낮고 자동화 여지가 적은 관광은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고 경제를 저숙련·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이들 남유럽 3국(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은 모두 청년 실업률이 20%를 웃돌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는 스페인조차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27.1%에 달했습니다. 이는 젊은 인재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의미하며, 미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고부가산업은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과 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므로, 이러한 산업의 부재는 청년 실업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미래를 위한 해법: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

미래를 위한 해법: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

남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경제적 딜레마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부가산업으로의 구조 개혁이 불가피합니다. 단순히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정보기술(IT),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첨단 제조업 등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IT 등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 유치

고부가산업은 높은 생산성과 혁신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가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규제 개혁: 스페인과 같이 복잡하고 경직된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고부가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규제 완화가 중요합니다.
  • 인적 자본 투자: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고, 고부가산업이 요구하는 전문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 연구 개발(R&D) 투자 확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R&D 투자를 확대하고,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창출하는 기반이 됩니다.
  • 투자 유치 인센티브: 해외 고부가산업 기업들이 남유럽 국가에 투자하도록 유인하는 세금 감면, 보조금 지원, 행정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청년 고용 증대와 경제 다각화

섹션 5 이미지

고부가산업으로의 전환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IT 산업이나 첨단 기술 분야는 젊은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는 곧 국가의 생산성 향상과 경제 활력 증진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경제 구조가 다각화되면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 탄력성이 높아져 더욱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남유럽 국가들은 매력적인 관광 자원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강점만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관광산업이 가져다주는 단기적인 번영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고부가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을 넘어,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남유럽이 관광 함정에서 벗어나 혁신과 고부가산업을 통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할 때입니다. [아테네 김슬기 기자 발췌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댓글 달기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

error: Content is protected !!
위로 스크롤